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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한 고찰

🤞장문 주의

기록(記錄) :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1년 동안 학부 연구생으로 생활했던 주전공 대학원 진학을 그만두고 오히려 주전공을 위한 도구로 배우기 시작한 코딩을 본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나도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몇 개 안되는 게시물을 작성했다.

인수인계 과정이 금방 끝날 줄 알고 병행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3월이 되어야 나는 연구실 자리를 뺄 수 있었다. 병행하는 시간 동안 작성한 글은 사실 코드 복사 붙여넣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이제야 조금 편하게 공부하겠구나 싶던 와중에 네이버 신입 채용 공고를 보게되었다. 이건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어서 호기롭게 자소서 작성을 도전했는데 1번부터 막혀버렸다. 선택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자신 있는 이유(그동안의 노력, 경험, 강점 포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나는 왜 개발을 하려고 하는 걸까?


복수전공을 시작한 첫 학기, 소프트웨어 공학론과 C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 중 C 프로그래밍을 가르치신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C언어, 파이썬을 프로그래밍 ‘언어(Language)’라고 부른다. 코드를 작성하는 것도 하나의 글을 쓴다고 생각해라. 개발자가 되면 사람들과도 코드를 가지고 소통을 하게되고, 기계와도 코드를 통해 소통하지 않느냐…”

다시 말해서, 걸어다니는 코딩머신이 아니고서야 협업은 피할 수가 없으니 효율성을 위해 주석을 작성하는 습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코드나 변수명을 위해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처음 듣고, 아주 약간의 감명을 받았다. 코드도 글처럼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도구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명과학 연구를 통해 논문을 쓰는 것도 코딩 처럼 글 쓰기인데 나는 왜 코드쓰기를 택했을까?

어린 시절, 나는 컴퓨터와 가까이 지냈다. 본가에 있는 사진첩을 보면, 게임을 하는 사진을 종종 볼 수 있었다. 5살이 될 무렵에는 쥬니어네이버에서 한글공부를 했다나 뭐라나.

그 이후로 중학생 무렵에는, 데스크탑 부품을 조립해 나름대로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시 엔지니어를 생각했던 적이 있으나 정말 생각만 하고 말았다. 그냥 게임이나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 탐방을 가면 나는 항상 컴퓨터 공학과의 부스에 가서 이것저것 상담을 해보고 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금방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문득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보다가 왜 각자 다르게 행동하는지 그 심리가 궁금해져, 심리학과를 가려했다. 근데 이것도 얼마가지 않아 현실적인 선택을 해 이과로 진로를 틀게 됐다.

일단 이과로 전향한 뒤 생명과학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그래도 명확하다. 친구들과 과학 소논문을 작성하는 교내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동물의 뇌 진화 과정을 주제로 정해 다룬 적이 있었다. 어류 부터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까지 어떤 순서로 발달해 왔는지 가설을 제시한 내용으로 기억한다. 2주일 동안 밤을 새가면서 낑낑댔는데, 다행스럽게 1등을 해 정말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이 영향으로 인해, 나는 자연스레 생명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는 생물이 즐겁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재밌지 않아 회의감을 느끼던 중, 얼마 전 까지 지도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bioinformatics 라는 분야에 대해 알게되었다. 무한 반복하는 실험에서 벗어나 컴퓨터를 가지고 분석도 하다니! 하지만 코딩을 한 적이 없어 고민하다, ‘그럼 배우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그렇게 연구실 생활도 병행하며, 대학원 생활을 꿈꿨으나…

1년이 지나자 그냥 앞으로 생활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을 그냥 다른 사람에게 줘도 아깝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고. 마음이 복잡해서 핸드폰으로 아무 글귀나 써내려갔었다. 아주 가끔, 스스로에게 문답이 필요할 때 생각 정리차 글을 쓰곤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남겨놓지 않고 대부분 지워버리곤 했었다. 아깝게.

아무튼 지금 처럼 생각나는 말을 썼다가 지웠다 반복하니, 다소 빠르게 생각 정리가 되었고 나는 3일 만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돌고 돌아 나는 결국 어릴 적 흥미를 좇아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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